디지털 시대의 그늘…‘기업평판 앱’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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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평판 앱에 접속한 모습.(사진=선명규 기자)

‘블라인드’, ‘잡플래닛’ 등 익명성에 기반한 기업 평판 앱의 폐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서비스들은 과거 기업 내부의 불법사례 고발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폐쇄적인 대한민국 기업문화에 돌파구를 열어줬다는 순기능을 인정받았지만, 최근에는 본연의 목적은 사라지고 성희롱과 불륜 등 잘못된 성문화를 확산시키거나, 기업에 대한 근거없는 공격을 일삼는 채널로 변질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내부고발을 빙자한 음해, 모욕, 명예훼손 등의 사례까지 잇따르면서 직원들의 익명 커뮤니티 접근을 단속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CNB=정의식 기자)

팍팍한 직장생활 ‘작은 위로’ 됐지만
성희롱‧불륜·가짜뉴스 온상으로 변질
기업들, 일부직원 허위음해로 골머리
전문가들 “익명성 부작용 개선해야”

 
기업 근무자라면 누구나 익명으로 가입해 자유롭게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블라인드’ 앱, 외부에선 알기 어려운 기업의 속사정을 취업자의 후기를 통해 체크할 수 있는 ‘잡플래닛’ 등은 취업준비자나 이직자, 기취업자 등 대부분의 직장인에게 유용한 서비스다.

이 분야의 대표 격인 블라인드의 경우, 익명성을 바탕으로 국내에서 약 210만명의 직장인이 가입돼 활동하고 있다. 이 서비스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팀블라인드에 따르면, 가입자 중 84%가 25~44세이며, 수도권 근무자의 비중이 높다.

과거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이나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여승무원 신체접촉 논란 등이 블라인드를 통해 공론화되면서 한때는 ‘직장인의 신문고’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블라인드 오픈채팅방 접속 모습.(사진=정의식 기자)

하지만, 최근 블라인드는 기업문화 개선보다는 연애와 미팅의 장으로 변질된 분위기다. 앱을 실행하면, 자신을 ‘S모 기업 소속 40대 남’ 혹은 ‘L모 기업 소속 30대남’으로 소개한 단체 채팅방을 열어두고 ‘이성 유혹’에 집중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19금 게시판은 직장인들이 노골적으로 성을 묘사하고 사적 만남과 불륜을 조장하는 글이 매일 수백개씩 올라오는 등 비윤리적 일탈 행위들이 버젓이 성행하고 있다. 일부 남성들은 쪽지를 통해 여성들에게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등 성희롱도 서슴지 않고 있다.

‘내부고발’을 악용하는 문제도 심각하다. 회사에 불만을 품은 일부 직원들이 내부고발을 빙자해 사실관계를 악의적으로 왜곡하는 글을 올리거나, 직장 동료와 상사, 경영진을 인신공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로 인해 근거도 없이 누명을 쓰는 사례, 조직내 갈등이 빚어지는 사례, 회사의 명예가 심각하게 실추되는 사례 등이 제보되고 있다.

기업들, 악성 리뷰에 속수무책

‘잡플래닛’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이 사이트는 기업의 채용공고는 물론 연봉수준과 면접요령 등 취업 준비생을 위한 다양한 기업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익명성에 기반한 기업 리뷰가 서비스의 중심이다보니 근거없는 리뷰 때문에 애꿎은 기업들이 피해를 입는 사례가 많다. 특히 외부 비판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이 피해당사자가 되기 쉽다.

 

잡플래닛 접속 화면.(사진=정의식 기자)

한 중소언론사 간부인 D씨는 CNB에 “잡플래닛에 우리 회사에 대한 리뷰가 올라왔다 해서 확인해봤더니 전혀 사실과 달랐다”며 “임금액, 근무시간 등이 아주 열악한 것으로 기재돼 있어 황당했다”고 말했다. 특히 D씨는 “이 리뷰가 올라온 시점을 보니 3개월 전이었다. 그 사이에 채용공고가 나갔는데 지원자가 예전보다 확 줄었다”고 밝혔다.

업계 정보가 풍부한 경력구직자들은 잡플래닛 리뷰의 진실성 여부를 판단하기가 용이하지만, 사회 초년생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취업 준비생 C양은 “면접에서 합격해 일단 일해보고 싶었지만, 친구가 알려준 잡플래닛 리뷰를 읽어보고나서 그 회사에 취업할 마음이 사라졌다”면서 “나중에 전혀 그런 이상한 회사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돼서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고 아쉬워했다.

세대갈등으로 보는 시각도

이처럼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앱과 서비스에서 유언비어 유포로 피해를 입은 개인이나 기업이 늘고 있지만, 법적 책임을 묻기는 쉽지 않다. 사이버수사대 등에 신고를 해도 익명 서비스의 특성상 관련자 파악이나 처벌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불법적인 행위를 방치하고 있는 일부 커뮤니티 앱과 서비스에 대해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D법무법인 변호사는 CNB에 “블라인드 등 일부 커뮤니티가 상업적 목적으로 모욕과 명예훼손을 방치하면서 사람들을 끌어 모아 광고수익을 올리고 있다” 며 “개인의 명예와 기업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서는 사회적 규제 논의와 법안 마련을 통한 대처가 시급하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업 내 세대간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를 지적하는 시각도 있다.(사진=픽사베이)

한편, 이러한 갈등의 원인이 세대차이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고 기업에서 세대간 소통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소위 말하는 밀레니엄 세대(1980년~2000년 생) 직장인들과, 이들 입장에서 ‘꼰대’로 지칭되는 기성세대와의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한 갈등이 익명 커뮤니티를 통해 표출되고 있다는 것. 직장문화가 급변하면서 나이든 상사의 지적이 ‘갑질’로 비춰지고 있다는 얘기다.

청주대 김찬석 미디어콘텐츠학부 교수는 CNB에 “익명의 소통은 사회적 의견의 활성화와 소통 욕구 해소에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사회적 문제에 대한 균형잡힌 진단과 합리적 개선을 위한 소통을 가로막는 단점이 있다” 며 “사회구성원 모두가 언어 사용에 신중을 기해야 하고, 기업조직에서는 4차 산업혁명시대의 환경에 맞게 소통의 효능감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CNB=정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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