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석 : 중요한 건, 기획의 심지를 지키는 것이다 - 대한민국 예능 천재 나영석 피디의 콘텐츠 감각 (1)


대한민국 예능의 새 지평을 연 나영석 피디.

그가 손대는 예능은 모두 소위 말하는 "대박"을 쳤는데요. 그의 뛰어난 콘텐츠 감각의 관한 이야기를 미디컴 여러분들과 함께 보기 위해 
롱블랙에서 발췌해왔습니다 :)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이 아닌 (물론 이 말도 맞지만) 기획의 심지를 지키는 것이라는 나영석 피디 

그의 콘텐츠 감각, 함께 느껴보시지요 :) 

나영석 PD

나영석. 이 이름을 한 번도 안 들어본 한국인이 있을까요? <1박2일>부터 시작해 <삼시세끼> <꽃보다할배> <신서유기> <윤식당> <알쓸신잡> <뿅뿅지구오락실>… 대한민국 대표 예능을 숱하게 만들어 온 사람이죠. 백상예술대상에서 예능 PD 최초로 대상도 받았어요. 출연은 덤! 최근에는 유튜브까지 영역을 넓히는 중이에요. 그가 23년 차 현역 PD로서 내놓은 프로그램은 여전히 동시대 시청자들과 주파수가 통해요. 시청률이 높거나, 화제성이 높거나. 혹은 둘 다거나.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나영석 PD는 “나는 그렇게 대단한 크리에이터가 아니다”고 말해요. “내가 좋아하는 걸 아주 조금씩, 시대에 맞춰 형태를 바꿔나갔을 뿐”이라면서요. 


Chapter 1. 
내가 만든 걸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
‘공무원이 장땡이다.’ 대학 진학을 앞둔 나영석은 아버지 말을 믿고 행정학과에 갔어요. 하지만 대학생활은 지독히 지루했죠. 학교에 사람이 많은 것도, 강의가 어려운 것도.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대학 생활을 이렇게 허무하게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정 붙일 곳을 찾다가 연극반으로 갔죠. 즐거움과 안정감, 동료의식. 연극반은 그의 마음에 쏙 들었어요. 한 가지 문제는 동료들과 밤새워 만든 연극을 보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말을 걸 순 없을까.’ 고민하다 코미디 연극을 선보여요. 그런데 그게 또 너무 재밌더래요. 태어나 처음으로 ‘뭔가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말이죠.
“4년 내내 했던 연극 덕분에 나는 콘텐츠 만들 때 즐거운 사람이란 걸 깨달았어요. 만드는 즐거움이 커질수록, 만든 걸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도 커졌어요.”

잘하는 걸 열심히 한다
‘코미디 대본을 쓰는 작가가 너무나 되고 싶다!’ 인기 시트콤 <세 친구>의 막내 작가 자리에도 지원해 봤지만 떨어졌죠. 뒤이어 들어간 영화사는 얼마 안 가 부도로 망했어요. 간신히 충격을 떨치고는  PD 시험을 보기로 해요. ‘이번이 마지막이다’ 생각하며.

“기자도 아니고 왜 PD 뽑으면서 시사상식이나 논술 시험을 치르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결국 시사상식과 논술은 포기하고, 오로지 기획안 테스트에만 매달렸죠. ‘잘하는 걸 열심히 한다’는 게 제 신조기도 했고요. 모든 걸 어중간하게 잘하는 사람보단, 뭐 하나라도 반짝이는 구석이 보이는 사람을 더 좋아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예상은 적중했어요. 2001년 KBS 공채에 합격했죠. 당시 나 PD는 <냉장고를 열어라>란 프로그램의 기획안을 냈어요. 셰프가 연예인 집을 방문해,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만으로 요리한다는 아이디어였죠. 헉, 2014년 방영된 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와 비슷한 포맷!

chapter 2. 1박 2일 :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새 장르를 만들다
나 PD를 세상에 알린 프로그램은 <1박2일>이에요. <1박2일>은 우연한 계기에서 탄생했어요. 전신이었던 <준비됐어요>란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저조했거든요. 강호동이 MC였는데도 말이죠. 위에서 “싹 다 바꿔”라는 명령이 떨어져요. 제작진들은 이번엔 꼭 성공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갖고, 새 프로그램을 고민했죠.

“좋은 프로그램은 ‘발명’되는 것인가, ‘발견’되는 것인가. 어느 쪽인지는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좋은 프로그램이란 다음의 세 가지를 만족시킬 때에야 비로소 만들어진다는 것. 첫째, 새로울 것. 둘째, 재미가 있을 것. 셋째, 의미가 있을 것. 그리고 가장 우선시해야 할 요소는 바로 ‘새로워야 한다’는 명제다.” _나영석,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 중에서
그렇다고 <준비됐어요>를 무턱대고 중단할 순 없었어요. 일단 프로그램 안에서 여러 실험을 해보기로 하죠. 예를 들면 ‘복불복福不福’ 게임 같은 거요. 한 번은 출연자들을 폐교로 데려가서 복불복 게임을 시켰어요. 유독 가수 은지원 씨가 겁에 질려있더래요. 알고 보니 그는 정말로 귀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었던 거죠. 그 순간 나 PD는 깨달음을 얻어요.

 

“잊고 있던 진실을 ‘발견’한 순간이었어요. 복불복 같은 새로운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출연자들이 상황에 얼마나 몰입하는가가 중요하죠. 그때부터 출연자들이 괴로워하고, 두려워할 만한 상황을 만들고자 노력했어요. 밥도 굶기고 잠도 밖에서 재우고… 물론 시청자가 불쾌해하지 않을 만큼 감도를 지키면서. 그러려면 시간이 1박2일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고, 그렇게 <1박2일>이 탄생한 거예요.”
프로그램 콘셉트를 동료들에게 들려주자, 이명한 PD가 촬영 아이디어를 보탰대요. “출연자 한 명 한 명한테 6mm 카메라를 하나씩 붙이자”고. 오프닝부터 클로징까지 생각할 틈을 주지 말고 계속 찍자는 얘기였죠. 반신반의하며 그렇게 <1박2일>을 첫 촬영했죠. 마침내 다가온 첫 내부 시사회 날. 1박2일이나 촬영 했더니, 멤버들이 점점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모습이 찍혔더래요. 표정이 살아 있었고 편해 보였어요. 엄청난 재미는 아니었지만 보는 내내 엷은 미소가 나왔죠. 무사히 내부 시사를 넘겨요. 대망의 첫 방송부터 시청률 두 자릿수가 나왔어요. 이후 <1박2일>은 최고 시청률 43%를 달성하며 국민 프로그램이 됐죠.

두근거림을 좇아서 하는 게 일이다
빛이 강한 만큼 그림자가 짙은 법이죠. 프로그램이 성공할수록 부담감이 나 PD를 덮쳐요. 무리해서 촬영하는 날은 늘어갔고, 가족들 얼굴 한 번 못 보는 날 역시 이어졌죠. 그즈음 종합편성채널이 생겨났고 케이블 방송사가 커졌어요. 나 PD를 스카우트하겠다며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기 시작해요. “몸값이 올라갔다”는 생각에 뿌듯했지만, 자식 같은 <1박2일>을 그만둘 순 없었어요. 마음을 다잡고 정진했죠. 하지만 <1박2일> 출연자들에게 안 좋은 소식이 연이어 닥쳤어요. 결국 시즌1의 종영 날짜가 정해졌고, 프로그램과 느닷없이 작별을 맞이해요. 설상가상 KBS 파업도 시작됐어요. 그에게 처음으로 무기한 휴식이 주어져요.
“100일 정도 쉬었을까요. 어느새 머리에 아이디어가 차곡차곡 쌓였어요. 친한 동료에게 이 아이디어를 들려주면서 저 자신이 신난 게 느껴졌어요. ‘나, 다시 일을 하고 싶구나’ 깨달았죠. ‘일이란 머리가 아닌 가슴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것, 성공이 아닌 두근거림을 쫓아야 한다는 것.’ 그런 당연한 진리를 다시금 얻었달까요.”
2012년 나 PD는 막역한 사이인 이명한 PD와 이우정 작가가 있는 CJ ENM으로 이직해요. 그곳에서 <꽃보다할배> <삼시세끼> 등 걸출한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시작했죠.

나 PD는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예능 장르를 만들었다. 사진은 촬영 중 아내의 출산 사실을 알게 된 강호동의 모습. ⓒKBS

Chapter 3.기획자 나영석 : 한 줄을 뽑아냈다면, 어떻게든 사수하라
나 PD는 새로운 걸 계속 시도해 왔다는 것. 시골에서 밥하고 농사짓는 프로그램도, 해외에 식당을 차리는 포맷도 그 시작은 나 PD였다. 그런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올리는 걸까요?

“기획은 다 똑같아요. 저도 회의를 하는 게 첫 번째예요. 다만 심플한 걸 선호해요. 프로그램의 의도를 명확한 한 줄로 뽑을 수 있느냐를 중요하게 보죠. 요즘 사람들의 니즈나 트렌드 보단, 우리가 하고 싶은 것에 무게를 두고요.”

예를 들어 ‘삼시세끼’. 시골에서 삼시 세끼 지어먹는 프로그램이죠. 2014년 첫 시즌 때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하며, tvN의 예능 돌풍을 이끌었어요. 벌써 8년째 <어촌편>과 <산촌편> 등 시즌 5까지 제작했어요. 실은 나 PD의 개인적인 성향이 반영된 기획이에요. 열심히 기획 회의를 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대요. “일하기 싫고 시골에서 휴가나 보내고 싶다”. 그러다 한 줄이 나왔어요. “도시 사람들이 시골에서 휴가를 보내는 프로그램을 만들자”고요. 출연자도 일부러 도시적인 이미지의 연예인들로 섭외했어요. 배우 이서진과 옥택연. 시골 생활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가마솥에 밥 짓고, 깍두기 담그며, 국 끓이는 모습이 우스우면서도 공감대를 얻었죠. 최근 방영된 <뿅뿅 지구오락실>은 이 한 줄이었어요. “젊고 씩씩한 새로운 세대의 여성들이 모여 <신서유기> 같은 게임을 하자”. 그렇게 이은지, 미미, 이영지, 안유진 등 대중에겐 조금 생소한 연예인들이 모여, 계속 게임만 하는 프로그램이 나온 거예요. 명확한 한 줄이라니! 왠지 비기를 만난 기분이에요. 당장 그 한 줄을 뽑는 비결을 알려달라 했죠.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어요. “누구나 할 수 있다”고요.

“콘텐츠 업(業)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 한 줄은 다 회의실에서 뽑아낼걸요? 중요한 건 처음 뽑아낸 그 한 줄을, 실행단까지 끌고 가는 거예요. 많은 이들이 실패할까 봐 리스크 헤징Hedging*을 걸어놔요. 그럼 변질되고 타협하기 마련이에요.”*위기 상황을 대비해, 이런저런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 

<뿅뿅 지구오락실>만 해도 타협할 구석은 많았어요. 누구나 알 만한 박미선 씨 같은 중견 연예인을 라인업에 넣을 수도 있었죠. 혹은 강호동 씨 같은 베테랑 MC를 투입할 수도 있었고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딱 네 명의 여성 출연자로 쭉 밀고 갔죠. 처음 뽑은 한 줄 그대로.
“‘사람들이 잘 몰라도 돼' '우리가 (이 네 명을) 알릴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타협하지 않는 게 저와 동료들의 장점이에요. 음식점도 보면 잘 되는 가게는 딱 메뉴 하나만 팔잖아요. 이것저것 다 파는 가게는 특색이 덜하죠. ‘심지가 훼손되면 매력을 잃는거야’. 늘 되새깁니다.”

좋아하는 걸 시대에 맞게 조금씩 변형하라 
그래서일까요? 혹자는 그의 작품들이 자기복제라고 말합니다. 나 PD 스스로도 어느 정도 인정해요.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프로그램을 기획하니까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한정돼 있기 마련이죠.

“맞아요. 제 프로그램은 쭉 보면 일정한 톤이 있어요. 전 시골이 좋거든요. 밥도 좋고요. 밥 갖고 아웅다웅하는 모습도 정겹죠.” 
저는 그의 작품들을 김치찌개에 비유하고 싶어요. 김치찌개. 누구나 다 아는 맛이에요. 하지만 김치찌개 맛집 맛은 그 집 주방장만 낼 수 있어요.
“저는 그냥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해온 사람이에요. 아주 조금씩, 시대에 맞춰 그 형태를 바꿔가면서요.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제가 치킨을 튀기는 사람인데, 요즘 파스타집이 잘된다고 파스타를 만들 순 없어요.”
나 PD는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명확한 한 줄을 뽑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그 한 줄을 사수하는 것.
<삼시세끼>는 '도시 사람들이 시골에서 휴가보내는 프로그램'이란 한 줄에서 시작했다. ⓒ롱블랙

Chapter 4. 연출자 나영석 : 출연자가 몰입할 때, 시청자도 즐거워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뿐이라고 말하지만, 그가 만든 결과물은 대중적 사랑을 꽤 받는 편이에요. 만들기 전 성공을 예감하기라도 하는 걸까요?

“전혀요. 제 주파수가 대중의 주파수와 잘 맞을 때가 있긴 했죠. 하지만 요즘은 고민이 많네요. 내 생각엔 이게 재밌을 것 같은데 과연 요즘 사람들도 이걸 좋아할까? 그래서 여기저기 많이 묻는 편이에요.”
대박 조짐의 단서를 찾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출연자들! 그들이 재밌어하면 그 프로그램은 순항할 가능성이 높죠.
“후배에게 매일 하는 말이 있어요. 출연자가 촬영 마치고 행복해 하며 집에 가면, 그 프로그램은 이미 절반은 성공했다고.”

그래서 나 PD는 출연자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요. 발리에서 <뿅뿅 지구오락실>을 촬영할 때였죠. 출연자들이 놀이기구 타는 그림을 연출하려고 했어요. 스태프들이 사전답사해 직접 타보며 시뮬레이션도 했어요. 그런데 현장에서 뜻밖의 일이 벌어졌어요. 멤버들이 “정말로 너무 무섭다”는 반응을 보인 거예요. 나 PD와 스태프들은 설득하지 않았어요. 놀이기구 일정을 뺐죠. 

“우리 팀은 늘 출연자 중심이에요. 준비를 많이 해가도 현장에서 엄청 바꾸죠. 출연자 눈치를 보는 거랑은 달라요. 출연자가 진심으로 몰입하고 즐거움을 느껴야 시청자도 똑같이 재밌어하거든요.” 만약 놀이기구를 타자고 계속 설득했다면? 재밌는 그림이야 나왔겠죠. 그리고 팀워크가 깨졌을 거예요. “정말 요(손톱)만큼이라도 불편함을 강요한 건 맞잖아요. 그럼 미묘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해요. 제작진과 출연진 간의 라포rapport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나 PD는 이를 부모-자식 관계에 비유해요. 부모들이 자식에게 “공부 못해도 좋으니 건강하게만 자라달라”고 하죠. 하지만 성적표가 나오면? 혼내요. 그럼 자식은 조금씩 의심하기 시작해요. “엄마 아빠가 정말 날 사랑할까?”

“제작진이 출연자에게 100%의 지지를 보내잖아요? 출연자가 주체적으로 변해요. 그럼 숨만 쉬어도 웃길 수 있어요. ‘이 사람들은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받아주는구나’ 싶어서요. 현장에서 어떤 감정이 오가는지가 가장 중요해요.”

물론 재미라는 건 관계에서만 나오는 건 아니에요. 재미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들을 준비하기도 하죠. 게임이나 퀴즈 말이에요. 이런 건 어떻게 구상하는지 물었어요. 나 PD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해요. 후배 PD나 작가들에게 맡긴다고요.

“저는 트렌드와 거리가 먼 사람이에요. 원래 제 성향이 그렇고 이젠 나이도 있고요. 그래서 후배들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심지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공동연출을 하는 것도 그런 이유고요.”
프로그램의 대박 조짐은 출연자에게서 나온다. 그들이 촬영을 마치고 행복해 하면 그 프로그램은 절반은 성공했다고 말한다. ⓒtvN


- 2편에 계속 - 


출처, 롱블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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